고등학교 2학년. 그땐 원래 모든 게 명쾌했지만 그 날은 더리가 맑다 못해 머릿속에서 안개가 걷히고 빛이 찡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날 치른 모의고사에서 처음으로 전국권 한자리를 찍었다. 서울대 한 명 갔다고 플랭카드 올리는 지방 여고에서, 나는 교사들과 동기들에게 신이 되었다. 희망학과는 쭉 의대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과학자, 피아니스트 등속으로 장래희망을 갈아치웠지만 중학교 입학즈음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의사가 최선이라고 결론내렸다. 티비나 소설 등에서 학습했던 거 같은데, 의사는 명예도 얻고 돈도 벌고 타인에게 봉사도 되는, 그래서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직업으로 현실에서 유일할 것 같았다. 서울대 의예과에 마크를 하고 모의고사를 보면 떨어졌다고 나을 때도 있었지만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