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한국 역사

백제 금동 대향로,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 대향로]

찌롱스 2021. 3. 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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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부여 능산리 문화재가 가장 없을 만한곳에 주차장 짓기로 결정

 

주변 다 파보고 검사했는데 없어서 진행 승인됨.

 

발굴단중 한명이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함.

 

한번만 더 파보자 라고 공무원에게 

필사적으로 요청함.

 

원래 규정되면 이미 승인되서 윗사람들까지

결재 땅땅 받은거라 NO인데

 

갑자기 우주의 기운이 이상하게 몰렸는지

 

당시 부여군청 문화재관리국 기념물과 담당자가

 

오케이 해봅시다! 이러고 무리해서 예산까지 따로 때줌.

 

그리고 땅을 파보는데.....

 

갑자기 진흙 속에서 이게 나옴.

 

 

전에 이런 유사한게 한번도 없어서 발굴 당시에 뭔지 아무도 모름.

 

보름동안 유물처리 끝에 발굴단은 엄청나게 경악함.

 

 

 

"백제 금동 대향로"

 

무려 1,300년전 향로가 완벽한 형태로 보존된 유물인것.

 

1,300여년을 땅속에 있었지만 진흙이 완벽한

진공상태를 만들어줘 녹이 슨 흔적조차 없었다.

 

당시 학자는 이 유물 하나가 무령왕릉 발굴 전체와

만먹는 고고학적 대 발견이다할 정도.

 

당나라에 의해서 사비 백제가 멸망할 때

 

이름 없는 한명의 백제인이 목숨을 걸고 보물을 보호하다,

 

진흙속에 파 묻은 것이라 한다.

 

이것이 천년이 지나 우연하게, 그것도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로

후손에게 발견된것..!

 

수은과 금을 이용한 도금법인 "수은아말감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서양보다 처년ㄴ이나 앞선 기술이었다.

 

정밀하고 화려한 백제 문화재 중에서도

 

초초초초초초 고난이도의 작품으로, 동시대에도 견줄만한 작품이 없음.

 

이것을 만든 사람은 삼한 중에서도

 

미켈란젤로에 해당하는 초특급 천재일 것으로 추정.

 

 

1,300년전 유물이 어디 손상된 곳없이

완벽하게 보존된 지금의 자태를 보노라면

 

나라가 멸망하고 온 도시가 불타고 사람들이 죽는 와중에

무명의 한 백제인이 왜 목숨을 걸고

이것을 보호하여 진흙속에 파 묻었는지 알 것 같음.

 

정말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연속과 행운이 겹쳐서 말견된 유물.

 

현재도 소개할때 학자가 국보중의 국보중의 국보라고 말하는 그것.

 

백제 금동 대향로!

 

한반도는 고온 다습, 한랭 건조의 날씨에 침엽수림과 화강암지대라 서양이나

중원처럼 화려한 문화를 융성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럼에도 화려한 불교 문화재들이 만들어진 것을 보면

당시 사람들의 믿음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것같다.

 

날씨와 지형은 결국 인간사회의 의식주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현대의 교통발전이 무감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기계사용 이전에는 걸어서 가거나 말을 타고

가는게 전부였을텐데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우리나라에서는

왕성한 교역과 문화벌전이 아무래도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정도 유물이 불굴되었다는게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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