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금) 노량진 총무썰 3, 4편(썰 모음)

찌롱스 2021. 4. 2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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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시작....

 

 

 

 

카톡 대화목록으로 보이는 이 단 한 줄은 내 잠을 달아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톡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일단 난 굉장히 졸린 상태이기도 했거니와 이 톡에 답장을 하고난 뒤의 상황이 



너무나 쉽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내가 답장을 하고, 그리고 난 각 층에 설치되어있는 cctv를 피해서 은서의 방에 들어가고..



그러기엔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정리된 게 없었다.





물론 은서는 같이 침대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춤을 추게 만들 정도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은서를 덥썩 받아들이기에는



지금도 내 카톡 대화목록에 진호의



 '형 잘 지내시죠? 며칠 안됐는데 노량진이 그립네요.ㅎㅎ'



라는 톡과 셋이 함께였을 때 꽤나 의지할 만한 포지션인 믿음직한 형의 말투로



'진호야, 너랑 은서는 정말 잘 어울리는 거 같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아. 모르겠다..진짜..'





결국 난 그냥 그 톡을 누르지 않고 빨간 1이라는 숫자를 남겨둔 채 잠들기로 했다.











'한 번 더~ 나에게 질풍같은 용기를~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이예에~'





6시가 되자 오늘부터 공부만 생각하는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나를 깨워주는 알람이 울렸다.



이 고시원에서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 중의 하나인



세차도 가능한 수준의 샤워실의 강한 수압과 함께 말끔하게 씻고 책상에 앉았다.  



책을 펴기 전에 문득 은서가 생각났다.



'그래도 어제 결국은 잘 잤겠지..?'



톡을 보냈다.







지훈: 잘잤어? 나 어제 완전 깊히 잠드는 바람에 톡을 지금 봤어.





그리고 오늘 하루 계획을 작성 할 플래너를 집어드는 동시에 휴대폰이 울렸다.





은서: 못잠.



지훈: ..? 아예 못잤다고..?



은서: ㅇㅇ. 지금 학원 가려고 준비 중.



지훈: 피곤할텐데 학원 가는 게 가능해..?



은서: 어쩔 수 없어. 오후 6시까지 보강에 특강도 있는 날이라 따로 인강으로도 안 열어준대.



지훈: 힘내라..



은서: 약속 안 잊었지? 저녁에 봐.







'한 숨도 못잤나보다. 그런데 그 몸으로 학원을..?



역시나 좋은 학교를 나온 녀석답게 공부에 대한 의지가 남다른 건가..



나였더라면 아마도 그 순간 만큼은 그 범위는 독학으로도 가능해. 혹은 거기에선 시험에 안 나올거야라는



자기 합리화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









확실히 1시간이나 걸려 계획표를 세운 다음 날이라 그런지 공부가 잘됐다.



오전에 방에서는 오후 근무시간 시작 시간을 잊어 지각할 뻔 했을 정도로 집중을 할 수 있었고



오후에 총무실에선 역시 꼭 해야할 총무업무를 하는 것 외에는 오롯이 난 공부에 열중하였다.





'왠지 이번 2차 시험은 합격할 것 같네.'라고 혼자 중얼거려봤다.







오후 근무가 끝남을 알리는 저녁총무가 왔다.



저녁 타임 근무자 건우는 이번에 새로 뽑은 동생이다. 



나이는 28살, 키는 192. 학창시절에 농구를 했을 정도로 신체조건이 좋다.



나도 나름 180이라는 키에 부족함 없이 지냈다고 생각하지만 건우 앞에만 서면 위축된다.



하지만 건우는 그런 덩치에 걸맞지 않게 꽤나 어리숙하고 순수한 편이다.



사장님의 어떠한 요구에도 '네..'라는 대답과 함께 느리더라도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말그대로 성실한 동생이다.





"형님..수고하셨어요.."





"건우야, 밤이라도 샜어?(은서처럼..) 말 좀 또렷또렷하게 해봐."





"아..네..엡.."





그래도 난 이런 건우가 오히려 귀여웠다. 





근무시간에 고시원에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인수인계한 뒤



오후 내내 나와 함께 해준 두꺼운 책들을 들고 내 방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데 카톡이 울렸다.







은서: 끝났지?



지훈: 응. 금방. 



은서: 7시까지 고시원 앞에서 봐.



지훈: 너 안자도 돼?



은서: 응. 밥먹고 잘거야. 점심시간에 책상에서 자느라 밥도 못먹어서 배고파.



지훈: 그래. 그럼 7시에 봐.









'어제 내가 그 카톡을 읽었더라면..'





왠지 오늘 은서의 피곤함이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은서는 오늘 제대로 먹는 첫 끼라고 하는데 2800원짜리 고시식당으로는 왠지 미안함이 들었다.





'뭐가 좋을까.. 다른 거 뭐 없으려나..



치킨..?  삼겹살..? 아, 그 것보다 나 지금 얼마있지?'





통장을 확인해보니 8만 4000원이 남아있었다.





'월급 받은 게 언제인데 이제 이거 남았네..



드록바가 뭐라고.. 내가 다신 피파에 현질하나봐라..'





고시원 월급은 30만 원이었다. 그리고 고시원에서 제일 좋은 방을 하나 준다.



돈만 생각하면 적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르게 생각해서 돈 한 푼 없이 노량진에 오더라도



총무일을 하면 잘 곳과 월급 30만 원으로 20만 원짜리 월식 끊은 후 



간간히 1,000원짜리 아메리카노도 사먹을 수 있는 여유도 누릴 수 있다.



다시 한 번 내가 지금 고시원총무를 하고 있음이 다행스럽게 느껴졌고.



면접 보기 전 사장님께 보여줬던 평소의 나와는 거리가 있던 



당당했던 내 모습이 새삼스레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오늘은 은서 맛있는 거 사줘야겠다. 



치킨은 좀 흔하고.. 삼겹살은 주변이 너무 시끄럽고..



오랜 만에 초밥이나 먹으러 갈까?'





회계사로 일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녀석과 갔던



여의도나 강남에 있는 초밥집에 비하면야 초라하기 그지 없지만



난 저렴한 식당들로 가득한 노량진 학원가 근처에 있는 초밥집 치고는 



이곳이 나름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무려 '회전'초밥집이다.











약속시간과 장소는 7시 고시원 앞. 



난 먼저 나와 고시원 앞에서 담배 한 대를 피고 있는데 오전 총무 도현이가 지나갔다.





"어? 형 뭐해요? 밥 먹으러 안 가요?"





"가야지."





"그럼 같이 가요. 저도 식객 가는 길입니다."





"그게..오늘은 식객 안 가."





"그럼 뭐 먹어요? 약속 있어요?"





"약속은 아니고 그냥 뭐.."





순간, 고시원 현관문이 열렸다.





은서였다.





은서는 어제 밤 샌 사람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촉촉한 분홍빛 얼굴에



건조대에서 막 꺼내 입은 구겨진 내 싸구려 티셔츠를 입은 나와는 다른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은은한 베이지색 자켓에 



은서의 예쁜 다리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스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넌 맨날 예쁠 생각인 거냐..'라고 생각했다.









"형, 뭐야? 이 분이랑 저녁 먹으러 가는거였구나. 은서씨 안녕하세요! 형! 그럼 저 갈게요!"





도현이는 그 길로 한참을 뛰어가다 휙 돌아보더니 저 멀리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도현이 넌 진호랑 은서가 어떤 사이였는 뻔히 아는 녀석이 엄지손가락이 올라가냐..' 라고 생각했다.





도현이와 은서는 큰 접점이 없었다.



나와 진호, 은서야 셋이서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했지만 그 자리에 도현이가 함께인 적은 없었다.



다만 지인들의 지인에게 할 수 있는 가벼운 목례 정도 나누는 사이 정도라 말하면 될 것 같다.









"야, 지은서. 넌 무슨 고시식당 가는데 이렇게 차려입고 나오냐?"





"무슨 소리야. 나 원래 이렇게 입고 다니는데."





맞는 말이다. 생각해보니 은서는 항상 옷을 잘 입고 다녔었다.





"은서야. 사실 오늘은 식객 말고 다른 데 갈거야."





"어디?"





"회전초밥."





"노량진에 회전초밥이 있어?"





"응. 파리바게트 건물 2층에 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 물론 그렇다고 너무 기대는 하지마."









초밥집까지 같이 걷고 있는 사이라서가 아니라 은서는 유독 눈에 띄는 아이였다.



160 초반의 키지만 얼굴이 너무 작아서 5cm는 더 커보이는 비율에 유달리 큰 눈과 하얀 피부.



그리고 귓볼마저도 눈, 코, 입과 조화가 절묘하게 이루어진 듯한



한마디로 정말 예쁜 아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실제로도 초밥집 문을 열기까지 서너명의 남자들이 은서를 힐끔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난 거기에 괜히 뿌듯함을 느꼈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예쁜 외모를 한 여자를 사귀게 되면



피곤한 점도 꽤 많겠다라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했다.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초밥집 안은 한산했다.





"오늘은 내가 쏠거니까 천 원짜리 초록색 접시 같은 거 말고 사 천 원짜리 검정색도 괜찮으니까 마음 껏 주문해."





혹시나 부담을 가질까봐 뱉은 말이었는데 순간, 거들먹거리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으려나 하는 괜한 걱정이 들었다.





'항상 세련되고 좋은 옷만 입고 다니는 은서에게 노량진 초밥 따위로 무슨..'











"오빠는 술 안 마셔? 회 먹을 땐 무조건 소주가 있어야된다며."





"그거야. 우리 둘이 아니라 진호도 있었.."









'또 실수해버린 것 같다.. 나라는 놈은 이별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옛 연인의 이름을 이리도 쉽게 꺼내는 



생각없는 놈이었던가..'라고 생각했다.









"아냐, 난 괜찮아. 사이다 마시면 돼. 사장님, 여기 처음처럼 한 병이랑 사이다 하나 주세요."





은서의 센스있는 대처가 고마웠다. 









예전에 은서와 술을 마셨을 땐 진호도 있었기에



나랑 진호는 술을 마시고 은서는 항상 사이다를 마셨었다. 



술은 둘만 마셨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셋 중에 술 안 마신 사람을 찾아보라고 하면



맞추기 쉽지 않을 정도로 은서는 술 한 잔 입에 안 대고도 분위기를 잘 맞춰주는 아이였다.







"아쉽네..나도 오늘 같은 날은 딱 술 한 잔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너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온 몸에 열이 나고 어지럽다며?"





"그러니까 아쉽다는 얘기잖아."





"그나저나 오늘 같은 날이라니? 오늘이 무슨 날이야?"





"꼭 특별한 날이어야 날이라고 할 수 있나? 밤새 한 숨도 못 잔 몸인데도 불구하고

말이 잘 통하는 따뜻한 사람과 맛있는 저녁을 먹는.. 

그 정도로도 오늘 같은 날이라는 말을 붙이기엔 충분하지 않으려나.."





"뭐 그럴지도.."









하지만 은서는 '오늘같은 날'이라고 말한 사람치고는 



한 숨만 몇 번씩 쉬며 신경쓰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힘들다..힘들다..'라는 혼잣말만 몇 번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힘내. 곧 괜찮아 질거야. 이별이라는 게 결국 시간이 약이니까.."





"이별..? 아... 아냐. 그거 때문은.."





"그럼..공부? 시험 12월이랬지? 아직 시간 많으니까 지금부터 잘 준비하면 돼."





"응. 아니야. 공부도 나름 계획대로 잘 준비하고 있어. 자신도 있고."





문득 시험에 대해 저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부러웠다.





"그럼 뭐가 문제야? 나한테까지 말하기엔 무리인 이야기인가?"





"아니. 난 이미 부모님한테도 못 할 얘기도 오빠한텐 줄곧 해왔었는데 뭘..

그냥 나도 잘 모르겠어. 맛있는 거 먹으러 와서 이게 뭐람..한 숨이나 푹푹 쉬어대고..

이젠 힘낼게. 미안.ㅎ"





라고 말은 했지만 평소의 우리답지 않게 대화는 자주 뚝 뚝 끊겼었다.



그리고 평소의 나라면 상대가 누구든 이런 어색한 분위기는 절대 참지 못하고



어떻게든 대화주제를 만들어내곤 했다. 



물 속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물 위에선 태연히 떠있는 오리마냥



신발 속 발가락을 엄청 꼼지락거리며 대화주제를 꺼내더라도 얼굴 표정 만큼은 자연스러운..?



몇 안 되는 내 장점 중의 하나쯤 되려나..



어찌됐든 평소의 우리나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은 확실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라서 행복합니다."





바 앞에 있는 큰 TV에서 익숙한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점수마저도 너무나 익숙한 8대 2..





'김응룡이 와도 달라지는 게 없구나..'





분명 내가 팬이 되기 시작한 2008년 여름까지만 해도 한화는



전반기를 2위로 마친 강팀이었는데 그 후로 한화는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 간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팀이 플레이오프에 가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쯤되니 



'내가 좋아해서 이렇게 된 건가..'라는 미안한 마음까지 생겼다.





씁쓸한 마음에 소주 한 모금이 생각나 잔을 들었다.











그런데.. 



내 잔이 비어있다.

















"미안. 오빠가 TV만 보길래 심심해서 오빠 꺼 내가 한 잔 마셔버렸어."





















"근데 은서 너 술 마시면.."

 

 

 

 

 

 

3편끝.....

 

 

 

 

 

 

 

 

 

 

 

 

 

4편 시작 ㅎㅎㅎ

 

 

 

 

똑똑히 기억한다.



한 달 전 쯤 오징어야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있던 은서는 분명히 말했었다. 





'난 술자리는 재밌고 좋은데 내가 술은 한 잔도 못해서 너무 속상해.. 



대학교 1학년 때 신입생 환영회에서 딱 한 잔 마셨는데



1시간 뒤 친구들이 집까지 택시태워 보냈어야 했을 정도니까..



그래도 술 마신 사람처럼 잘 놀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돼.' 









"야. 너 한 잔만 입에 대어도 쓰러진다며..?"





"'음..그래도 '오늘 같은 날'엔 한 잔 정도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말하며 생긋 웃어주었다.



순간 나 역시도 정말 그럴 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이 들 정도로 정말 예쁜 웃음이었어서



나도 모르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버렸다.









"하루종일 먹은 게 없다고 했잖아. 먹고 싶은 거 더 주문해."





"아냐. 나 나름 많이 먹었어. 이것 봐. 접시가 하나, 둘, 셋, 넷.. 아, 배불러."





"그럼 나도 먹을 만큼 먹은 것 같은데..나갈까?"





"오빠."





"응?"





생긋 웃으며 은서가 말했다.





"우리 노래방 갈까?" 









은서는 노래를 정말 잘하는 아이였다. 진호랑 사귀고 있을 때 셋이 같이 노래방을 처음 갔을 때



나도 내 나름대로 보통 이상은 되지 않나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던 터라



자신있게 첫 곡을 불렀었는데 은서의 노래를 듣고 나서는 



그날 난 그 뒤로 노래를 거의 부르지 않았다.





그 둘의 노래실력에 위축된 것 보다는 



그보다 은서의 노래를 듣고 있는 게 너무 좋았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 보다 몇 배는 더 컸었으니 당연한 결정이었다.









"술 마셨는데 가능하겠어..? 게다가 어제 너 밤 샜잖아.."





"내가 뭘? 내가 어때서? 아무렇지 않은데? 왜?" 





아무런 문제없다는 듯 두 어깨를 올리며 양손을 펼치는 시늉을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 너가 괜찮다는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니."







은서는 작은 가방을 챙기고 자리에 일어나려고 했다.





'휘청.'

 



순간 넘어질 뻔 하는 은서 팔뚝을 겨우 잡았다.





"야, 너 괜찮다며. 뭐야, 이게.. 안되겠다. 고시원으로 바로 가자."





"그냥 헛디뎠을 뿐이야. 오바 안해도 돼. 진짜 나 괜찮아."





그렇게 말한 후 또 이내 곧 똑바로 걷는 걸 보니 진짜 괜찮아 보이는 듯도 했다.



그런데 그 걸음은 초밥집 출입문이 아닌 계산대에 멈췄다.





"오빠, 이건 내가 살거야."



"무슨 소리야. 여기 오자고한 사람은 난데 이건 당연히 내가 살거야."



"하지만 오늘 저녁 먹자고 먼저 말한 사람은 난데?"



"아 됐어. 그런 건 모르겠고 이번은 그냥 내가 내게 해 줘." 





그렇게 한동안의 작은 소동(?) 끝에 계산을 한 후 1층으로 내려오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술 한 잔 입에 댄 지금의 은서에게는 행여나 위험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난 말없이 은서의 몸을 내 쪽으로 당기고는 오른손으로 은서의 어깨를 감쌌다.





"조심해."





은서 역시 아무 말이나 반응도 없이 조용히 내게 몸을 기대었다. 





은서를 감싼 채 노래방으로 걸어가는데



고개를 살짝 돌리니 더운 날씨가 아님에도 술기운 탓인지 



은서의 볼은 불그스레 달아올라 있었고 흘린 땀으로 옆 구레나룻 끝이 촉촉히 젖어있었다.





은서는 지금 굉장히 힘들텐데



그모습을 보고 있는 난 



'너무 예쁘다..' 라는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나를 자각하니 



이런 내가 잠시 한심해졌다.







늦은 걸음으로 3분 정도 걸으니 



눈 앞엔 2층에 있는 노래방이 바로 보였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노래방 안은 손님이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해보였다.



그래서인지 사장님께서 더욱 반갑게 맞아주시는 듯 했다.





"몇 분이세요?"





"두 명입니다."





"마실 거 드릴까요?"







난 귀엽게 내 등 뒤 가까이 꼭 붙어있는 은서에게 물었다.





"은서야, 너 뭐 마실래?"



"난 포카리스웨트."



"포카리스웨트 그거 술 마신 뒤 먹으면 더 빨리 취하는 거아냐?"



"네. 아니거든요. 오히려 더 숙취에 도움이 된다네요."



"뭐야. 난 반대로 알고 있었네.."











난 여느 때처럼 맥주를 마실까도 고민을 해봤지만



은서 몸 하나 신경쓰기 바쁠텐데 자제하자라는 스윗한 생각을 했다.





"사장님, 포카리스웨트랑 실론티 하나씩 주세요."





라고 말한 뒤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찾는데



등 뒤에 숨어있던 은서가 어느새 내 앞을 가로막고 지갑 속 카드를 내밀었다.





"아까 오빠가 샀으니 이건 내가 낸다." 



"..그래..뭐.."



"그나저나 실론티라니.. 누가 아재라니랄까봐.."



"야, 뭐!? 실론티가 어때서!?"







은서는 들은 채도 안하고 사장님이 알려준 2번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가니 그 안에서 또 한 번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구조였고



둘은 신발을 벗자말자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나란히 벽에 기대어 앉아서 다리를 쭉 폈다.





술이 들어가서인지 아니면 이렇게 편하게 앉을 수 있어서 오는 나른함 때문인지



좀 피곤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 맞어. 술도 술인데 은서 너 안 졸려? 밤샜는데 괜찮아..?"



"이게 술 때문인지 잠을 못자서인지 모르겠는데.. 사실 좀 피곤하긴 해."



"거봐, 노래방은 다음에 가고 그냥 고시원에 가지 그랬어.."



"그럼 나 노래 한 곡만 부르고 오빠 무릎 베고 좀 누워서 쉬어도 돼?"



"어디서? 여기서?"



"응. 쇼파도 없고 눕기에 딱 좋겠네."





라고 말하며 은서가 노래방 리모컨을 집어들었다.





"오빠, 듣고 싶은 노래 있어?"



"음.. 그럼 그거 가능해? 두유워너스노우맨.. 어쩌고.."



"그래. 불러줄게."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은서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이다.



예전에 영화관에서 겨울왕국 애니를 보고 나왔을 때는 



'Let it go' 밖에 생각나지 않았는데



은서의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를 들은 후 부터



내게 겨울왕국의 대표곡은 이 곡이 되었다.



그 정도로 은서는 이 노래를 



안나보다 더 맑고 듣기 좋게 잘 불러서



ost를 은서가 불렀으면 더 잘 됐을텐데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반주가 시작되었고 은서는 마이크를 두 손으로 가지런히 잡은 채



예전처럼 예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녹음해두고 가끔 들을까..'라고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역시나 오늘도 은서의 노래는 좋았다.











"이제 오빠가 불러. 난 이제 좀 누워서 쉴게."라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내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순간 또 저번처럼 자기한테 닿았는데 내가 엄청 커졌었다는 둥 괜한 오해를 할까봐 



허리를 뒤로 더 빼서 최대한 닿지 않을 자세로 고쳐 앉는데 



최대한 은서가 눈치채지 않게 자연스럽게 하려다보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고쳐 앉았는데도  



여전히 아슬아슬.. 불안함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런 건 선천적인 부분인, 누구 탓도 할 수 없는 부분인데도



'은서는 왜 그때 그 말을 해서는 사람을 이렇게 신경쓰이게 하냐..'라며



괜히 은서 탓을 살짝 해봤다.







내 무릎 위의 은서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오빠, 얼른 노래."







그런데 뭘 불러야 할 지 정말 모르겠다. 



평소에 둘이 갔던 코인노래방이 아닌 일반 노래방이라는 환경에서 오는 문제인지



아니면..



어제 밤에 둘이 작은 고시원 방 안에서 함께 시간을 공유한 후라는  심리적인 문제 때문인지..





난 그렇게 한 곡을 고르는데 꽤 긴 시간과 침묵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지겠지만 난 이 노래를 선곡했고 



난 담담한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완벽한 상황 속 인연의 끝을
각자의 상처들은 각자의
인연으로
추억으로 만들어 잔잔한
상처들이
각자의 인연으로 각자의
인연으로
생각해보면 정말로 우린 아마
인연이 아닌가 봐
내가 있어야 할 순간에 내가
있었더라면
운명이란 인연이란 타이밍이
중요한 건가 봐
내가 있어야 할 순간에 내가
있었더라면
그때
랄라라 랄라라 랄라 라라
라라라 랄라 랄라 라라
라라라 라라 라라라..'





1절이 끝나고 전주가 흘러나왔다.





이 타이밍이면 은서는 언제나 박수를 쳐주거나 엄지를 들어올려준다.



내 노래 정도로도 저런 리액션을 보여준다는 것만 봐도 은서는 정말 착한 아이라는 걸 알 수있다.





그런데 그런 은서가 조용했다.





내 무릎에 있는 은서를 내려다 보니



다행히도 박수를 쳐주지 않은 이유가



이제 착하지 않은 아이로 변해버려서라기 보다는 



피곤함에 잠이 들어버려서라는 거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은서는 쌔근쌔근 옅은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 있었다.





그 숨소리는 



'내가 삼켜서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까지 하게 할 정도로 듣기 좋았다.









난 그렇게 은서의 얼굴을 가만히 한참을 내려다봤다.







문득 처음 만날 날이 생각났다.



그때 은서가 물었던 연락처가 동생이 아닌 내 연락처였더라면 어땠을까..



노량진 거리에서 손을 잡고 활짝 웃으며 은서와 걷던 사람이 나였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상상만 했을 뿐인데 난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나올 뻔 했다.



그 상상 속이 너무 행복해서였는지, 



아니면 그렇게 되지 못한 채 흐르고 있는 지금의 시간들이 너무 안타까워서였는지..



정확히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난 위험할 정도로 울컥해버렸다.









그 순간 은서가 뒤척이며 눈을 떴다.





"오빠 뭐해..?"



"뭐하긴,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 지 고민하고 있었지 뭐.."



"그 노래 가사 좋더라.."



"무슨 노래?"



"아까 오빠 부른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노래 말야.'



"잠든 거 아녔어..?"



"아니, 그땐 안 잤었어. 근데 오히려 그 노래가 가사가 날 잠든 척 할 수 밖에 없게 만들긴 했지만 말야."



"...."



"그러다 1절 끝나고는 정말 잠 들었었어."



라며 싱긋 웃었다.





여전히 내 무릎 위에 있는 은서에게 물었다.





"피곤하면 우리 이제 들어갈까?"



"아니, 이제 30분 지났는데 어딜 가."



"그럼 너도 잠깼으면 얼른 노래 불러. 



내가 노래방에서 알바를 해봐서 아는데 남녀 둘이 들어갔는데 20분 이상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일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둘이 딴짓한다고 생각해. 



게다가 지금 노래방에 우리 둘 밖에 없어서 우리가 노래를 부르는지 아닌지



더 티가 나서 오해받기 딱 좋단 말야."





"오빤 그런 오해가 많이 억울해?"





"야, 그럼 세상에 오해 받아서 좋을 사람이 어딨.."









은서가 갑자기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억울하지 않게 해주면 되는건가."



































내 입술에 은서의 입술이 닿았다.

 

 

 

 

 

 

 

출처 : MLBPARK (STARBU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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