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금) 노량진 총무썰 1, 2편(썰 모음)

찌롱스 2021. 4. 19. 14:14
반응형

세 명이서 교대로 근무하는 노량진의 어느 고시원 속의 이야기다.





총무 세 명 중 한 명인 친했던 형이 드디어 경찰시험에 합격을 했다.



정말 축하할 일이지만 당장 고시원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자원 유출(?)로 인한 부리나케 충원이 필요했기에 서둘러야 했고



다행히 며칠 간의 각종 공시생 커뮤니티의 광고와 전단지 살포 덕에



여러 지원자를 만날 수 있었다.





고시원 총무라는 저임금의 시덥잖은 일자리지만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었고 



그분들 못지않게 고시원 사장님과 나 역시 진지함을 바탕으로 한



열띤 상의 끝에  



남자 동생 하나를 뽑게 되었다.







나이는 나보다 열 살 남짓 어렸지만 



일처리 하나 만큼은 빠릿빠릿해서 금방 적응해 준 탓에



며칠 만에 별 무리 없이 고시원 생활은 예전과 같이 물 흐르듯 흘러가게 되었다.












여느 때와 다름 없던 어느 날 오후,





고시원 현관문이 열리고 



나른함 싸우고 있던 내 오후 근무의 지루함을 단 번에 깨버릴 만한..



노량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화려한 옷차림에 예쁜 얼굴의



20대 초반 여성 한 분이 총무실 앞까지 걸어와 내게 말을 건넸다.





"혹시 빈 방 있나요?"





평소에는 입실원서 하나 던져주고 딴 짓을 하던 나와는 다르게



고시원에 있는 모든 방에 대한 과하다 싶은 정도의 친절함을 보이고 있는 내 모습이



총무실 안 큰 거울 속으로 비춰지자



괜히 쓴웃음이 나왔다.







고시원 시설을 보여주기 위해



1층과 4층까지 같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살짝 던진 몇가지 질문을 통해서 난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여 임용시험을 준비하러 왔으며



나이는 23살이라는 여성 분의 정보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다.









이날 짧은 시간 대비 과했던 노력 탓인지 



그 뒤로 그 아이와 나는



고시원을 오가며 마주칠 때마다 가볍게 목례 정도를 나누거나 



고시식당에서 마주치게 됐을 때는



같이 합석해서 밥을 먹을 수도  있을 정도인



제법 가까운, 



혹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된 건 아닐까라는 착각까지



넘나들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라고 혼자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여자애가 총무실로 걸어오고 있었다.



난 헛기침을 몰래 두어번 하고 목청을 가다듬은 뒤 총무실 창문을 열었다.







나: 어때요, 고시원은 지낼 만 한가요?



여: 네, 총무님이 잘 알려주신 덕에 너무 잘 지내고 있어요~



나: 다행이네요. 그런데 총무실엔 무슨 일로..?



여: 저기..혹시..어..그러니까..



나: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우리 사이에..)



여: 음..저기 저녁타임에 근무하는 총무님 아세요..?



약간 마른 듯하고 잘생긴 얼굴에 키는 175 정도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얼마 전에 뽑은 그 총무였다.





총: 네, 같이 일하는 동생인데 당연히 알죠. 



여: 그래요? 그럼 혹시 그 분..연락처 좀 알 수 있나요..?



총: 연락처는 왜요?



여: 아..그 분께 개인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





포스트잇에 동생의 전화번호를 적기 시작했다.



(젠장..)







그 짧은 시간에도 난



동생이 아닌 내 번호를 적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예쁜 눈과 하얀 피부, 슬림한 몸매에는 반칙인 예쁜 볼륨..



잔인하게도 그녀는 오늘도 너무 예뻤다.









"여기있습니다."





긴장하고 있던 그 아이의 얼굴이 



금새 활짝 펴졌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라는 내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무의미한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멍하다.



여자에게 고백해서 차인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금 상황이 아프다.





그리고 난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이런 기분에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정당성이 생긴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는 듯 



총무실 책상에 펼쳐져 있던 형법 기출문제집을 덮고



부팅에만 5분이 걸리는 총무실 컴퓨터의 스타크래프트를 켜서



컴퓨터와 하는 1 vs 4 방을 만들었다.















이틀 쯤 지났을까,



난 0.7mm 제트스트림을 사러 간 어느 문구점 안에서 



그 여자애와 동생이 두 손을 꼭 잡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뭐 얼마나 가슴 아픈 사랑을 했다고.



잠깐의 아쉬웠던 내 마음은



시간이 흘러 



매일 같이 고시원 계단, 노량진거리, 뷔페식당 등등



언제 어디에서든 2인 3각 달리기를 하듯 꼭 붙어다니는 저 둘에 익숙해져가다 보니까 





그 아이는 더이상,



처음 봤던 날 내 맘을 떨리게 했던 핫한 외모의 여성이 아닌



그저 흔한 친한 동생의 여자친구 정도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아무 감정없이 셋이서 밥을 먹거나 술도 마실 수 있는 나쁘지 않은 관계가 되었다. 









그러다



둘이 손잡고 다닌 지 두 달쯤 되어갈 무렵,





동생과 여자애는 같은 날, 서로 다른 이유로  



내게 둘의 이별을 알려왔다.









둘에게 각각 적당한 위로의 말을 전했지만



사실 난 그때



이제 이 서먹한 사이에 낀 내 자신의 난처함에 대한 고민이 먼저 앞섰다. 

 











며칠 뒤,



돈은 없지만 술은 고파하는 나를 위해 가끔씩 노량진에 찾아주는



이른 나이에 전문직 시험에 합격한 고등학교 친구와의 



전 날 수산시장에서의 음주 탓에



침대와 한 몸이 되어있던 어느 날 오후..   









평소에 근무시간 외에는 



전화 같은 건 잘 안하시던 고시원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잠깐 총무실에 내려와라."





여느 때와는 다른 무거운 목소리에 예사롭지 않은 일이 터졌음을 직감하고



샤워는 미뤄두고 대충 모자만 눌러쓴 채 내려갔다.





그렇게 들어간 총무실안의 사장님은 



어둠의 기운을 엄청나게 내뿜고 계셨고 



말없이 시선을 고시원 cctv 모니터에 고정시켜두고 있었다.





모니터 속에는 



보름 전 새벽 5시 30분,



좌우 주위 눈치를 살피며 여성 전용층에서 몰래 빠져나오고 있는 



저녁총무의 모습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사장님(이하 '사'): 알고 있었냐..?



나: 네..?



사: 저 시간에 쟤가 여자층에서 나오고 있는 화면 속 상황 말이다..



나: 아뇨, 전혀요. 저한테 그런 말 한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었습니다.



사: ..정말이냐.



나: 네. 정말입니다.



사: 그럼 이번 일과 전혀 관계없지?



나: 네. 관계없습니다.



사: 그래, 그럼 걔 자르고 총무 하나 새로 구해서 다시 열심히 하자.









사장님 왈, 



고시원 앞 주차문제로 cctv를 돌려보는데 



다른 화면에서



새벽에 저녁총무가 여자층에서 나오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자



안그래도 여자친구랑도 헤어졌고 고향으로 내려 갈 생각이었다며



몰래 여자층에서 자고 나온 건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동생은 그렇게 다음 날 바로 고향에 내려갔고



사장님과 나는 저번과는 달리 



외모보다 다소 어리숙하더라도 순수하고 솔직해보이는 총무 한 명을 뽑게 됐다.







총무 동생은 곧 짐을 싸서 고향에 내려갔지만



그 여자애는 여전히 고시원에 남아있었기에 



그후로도 자주 마주쳤고



단 둘이 술을 마시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가끔 밥을 먹거나 코인노래방을 가는 정도의 사이는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에게 사건의 발단이 되어버린 문제의 카톡이 왔다.







여: 오빠, 혹시 오빠는 컴퓨터로 영화 같은 거 어떻게  봐요?



나: 난 토렌트로 보는 편..?



여: 그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일요일이라 방에서 쉬면서 영화나 보고 싶은데 할 줄을 몰라서..



나: 그거 네이버에 토렌트 사용법이라고 검색하면 상세하게 나와.



여: 그래요? 고마워요, 오빠.







10분 뒤,



다시 카톡 진동이 울린다.





여: 오빠, 나 못하겠어요. 컴맹이라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나: 음..그럼 나 곧 오후 근무니까 노트북 가지고 와. 내가 알려줄게.



여: 아, 그럼 되겠다. 알겠어요~









오후에 찾아 온 그 여자애의 노트북에 난 토렌트를 깔아주었고



몇가지 설명을 더 해주니까 활짝 웃으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오후 근무가 끝날 때가 되어 총무실 정리를 하는데 



또 한 번의 카톡.





여: 오빠.



나: 응? 영화는 잘 봤어?



여: 이제 다운 다 받았어요. 알려줬는데도 혼자서 또 한참을 헤매는 바람에..ㅠㅠ



나: 그래도 이젠 뭐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됐으니까 잘 된 거지. 재밌게 봐.



여: 오빠



나: 응..?



여: 이거 같이 안 볼래요? 



나: 영화를? ..어디서?



여: 제 방이나 오빠방에서요.

그리고 오빤, 총무니까 여자층에 올라와도 되지 않아요?

실제로도 자주 다니잖아요.



나: 그건 그런데.. 그건 고시원 일 때문인 거지.

그리고 얼마 전에 비슷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어서

사실 좀 불안해.. 미안해..ㅎ;



여: 그런가..혼자 보기 심심해서 그랬던 건데..알겠어요~ㅋ









근무를 마치고 내 방에 올라왔다.



저녁도 먹어야 하고 일요일이라 해야 할 빨래도 쌓여있는데



난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서



아까 나눈 카톡 대화만 다시금 몇번이고 읽고 있다.





'갈 걸 그랬나..



그냥 영화 한 편 같이 보자는 거야.



아는 동생의 여자친구였던 사람일뿐이고



게다가 나랑은 10살 차이인데 별 일 있겠어..



그리고 여자 전용층이라고 해봤자



난 밤 11시 이전에는 이런저런 일로 



자주 왔다갔다 했잖아..'





라는 혼자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 까지는 기억하는데



우리의 카톡 대화방 마지막에 내가 쓴 것으로 보이는 



 '10분 뒤 갈게.'



라는 말을 쓴 순간 만큼은 정말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말의 옆에 보이는 '1'이라는 숫자가 



사라지지 않기 만을 바라며 휴대폰을 침대에 던졌다.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자 옥상에서 담배 한 대를 폈다.



그리고 돌아와서 여러가지 복잡하게 섞여있는 마음을 뒤로 한 채 휴대폰을 확인했다.







1이 사라졌다.



그리고 한 줄이 더 추가되어 있다.





"오빠, 10분 말고 30분 뒤!"













'그래, 영화 한 편 보는 게 뭐 대수라고.



다녀오자.' 라고 대담한 척 무심한 척 혼잣말을 내 뱉은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게



 난 샤워를 하고 있었고



서랍에서 내가 가진 속옷 중 그나마 가장 나아보이는 것을 골라 입은 뒤



남은 시간을 침대에 앉아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그 30분은 지났고 나는



고시원에서 가장 방이 큰,



그리고 여자층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한 그 아이의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그 아이는 짧은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채 



침대에 기대앉아있었고 무릎 위에는 아까 내가 토렌트를 깔아둔 노트북이 올려져 있었다.





불이 꺼진 방에 스탠드 불빛 하나에 의지해야 했지만



방은 한 눈에도 굉장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쾌적했고



책상 위에 놓여진 디퓨저의 향이 은은하게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방음에 취약한 고시원이다 보니

그 아이는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 나 생얼이라 좀 창피해서 불은 껐어요.ㅎ;



일루와요, 오빠. 얼른 영화 보자.





침대에 나란히 기대어 앉아



노트북 왼쪽은 그 아이의 오른쪽 허벅지, 



노트북의 오른쪽은 내 왼쪽 허벅지 위에.





이어폰 역시 그 아이의 오른쪽 귀와 내 왼쪽 귀에 하나씩 꽂고 



영화 볼 모든 준비를 순조롭게 끝낸 뒤 스페이스바를 눌렀다.































20분 쯤 흘렀으려나..















결국



문제가 터졌다.









영화에 전혀 집중이 되질 않는다.



놀랍게도 단 1초도 영화가 내 눈에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 아이의 금방 감은 듯한 머리의 향긋한 샴푸냄새와



부드러운 로션 냄새는 내 코를 자극하고 있고



노트북 거치대 겸 한 쪽씩 붙여 둔 그 아이와 나의 허벅지는



둘 다 말려올라가기 쉬운 반바지라는 핑계로 마음껏 닿아있었다.









살결 그대로의 따뜻하고 매끄러운.. 



내 허벅지에 느껴지는 직접적인 자극도 자극인데



그보다



이런 노골적인 닿음을 둘 다 인지하고 있음에도



둘 중 어느 누구도 떼어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오빠.. 맨허벅지 정돈 닿아도 괜찮..아니, 사실 저도 지금 좋아요'



라고 말하는 듯한



상상 속 무언의 허락이 날 더 자극하여 



내 심장을 뛰게 하고 있었다. 









침 넘기는 소리마저 다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인 우리,



지금 미친듯이 쿵쾅거리는 내 심장소리를 그 아이도 들을 것만 같았다.





이 민망함을 깨기 위한 멘트를 뭐라도 찾아야한다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머리를 쥐어짜내는 순간,



고맙게도 이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오빠, 이 영화 별로다. 재미없어요."

 

 

 

 

1편완료... 2편에서....

 

 

 

 

 

 

 

2편시작 ㅎ

 

 

“그치..? 관객이 많이 들어왔다고 항상 재밌는 건 또 아니더라구.



그런데 다른 영화를 또 보기에는 지금 벌써 8시라서 시간이 좀 애매하긴 하네..



나 웬만해서는 밤엔 여자층에 올라올 일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랑 마주치면 좀 난처할 거 같거든.“



“그래요, 그럼 영화는 다음에 보기로 해요.” 





라는 말과 동시에 은서(그 아이의 이름)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오빠도 누워요. 누워서 얘기나 좀 하다 가요.”

 

“..그럴까..”

 



나도 누웠다.



아까는 노트북을 핑계로라도 붙어있을 수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명분이 없었다.

 

너무 가까워 부담이 되지 않게, 



그렇다고 그녀가 지금 순간이 불편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을 만큼의 



아주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그렇게 우린 같은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오빠는 나 어떻게 생각해요..?”



 

여전히 시선은 천장에 고정시킨 채 무표정한 얼굴로 물은 것 치고 질문은 대담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잖아요. 우리 자주는 아니지만 적어도 노량진에서 만큼은 서로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사이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오빠랑 난 무슨 사이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냥 뭐..친한 오빠 동생 사이라고 말하는 게 가장 적당할 거 같은데? 



그리고 그 이상은 진호(전 총무이자 그녀의 전 남자친구 이름) 때문이라도 생각해본 적도 없어.”



 

“그런 사람이 영화 한 편 보자는 말에 굳이 샤워까지 하고 온 이유는 뭘까..”



 

“그..그건 뭐 일 끝나면 항상..”



 

“근데 진호는 왜..? 아는 동생이랑 잔 여자는 안 된다.. 그런 건가?”



 

“아니, 그게 아니라.”



 

“됐어요. 농담이에요. 당황하기는.. 



그나저나 나 오빠한테 말 놓으면 안돼요?



다른 남자들은 조금만 가까워져도 선뜻 먼저 말 놓으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하던데 



오빠는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같이 갈 만큼 친한 사이인데도 그런 말이 없네.



자기는 말 놓으면서..“



 

“야, 그건 저번에 횟집에서 진호랑 술 마실 때(은서는 술자리는 좋아하지만 술은 한 잔도 입에 대지 못한다.) 



너가 놓으라고 했잖아. 그것도 거의 협박하듯이. 나 원래 쉽게 말 안 놔.



특히나 고시원 실원들한테는 더욱..“





 

“실원은 왜..?”





 

“왜냐니, 누군 놓고 누군 안 놓고.. 그러면 그걸 보는 다른 실원들이 편애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





 

“편애는 무슨..ㅋㅋ”





 

“이래봬도 난 노량진 바닥에서 만큼은 공인이라는 생각으로 총무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노량진에서는 길거리에 함부로 쓰레기도 안 버린다구.”





 

“공인 좋아하시네, 됐고. 아무튼 난 오늘부터 말 놓는다.”





 

“그래라..너말대로 나도 놓는데 뭘..”


 




 

그 이후로 은서는 항상 말을 놓아왔던 사람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들을 술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임용시험 고민, 대학생활, 자기 집안 일까지..

 

그런데 우리의 유일한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진호의 이야기는 



의식적으로 피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나올 이야기..



조심스레 물었다.



 

“진호랑 헤어진 건 어때, 괜찮아..?”





 

“음..그냥 그래.. 내가 조금 성급했던 것 같고..”





 

“아 맞다. 너 방에 진호가 들어왔던 거 고시원 사장님도 알아.(물론 나도 알게 됐고..) cctv로 봤대. 



그리고 진호도 그것 때문에 잘린거고.. 



그때 사장님은 진호 뿐만 아니라 너도 같이 퇴실 시키려고 하는 거 내가 겨우겨우 말렸다니까.”





 

“고맙네 그건.. 난 나가기 싫어. 여기가 마음에 들거든.”





 

“여기가 특별히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닌데 왜?”





 

“다른 데는 오빠가 없잖아.”





 

“....”





 

순간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냥 다른 고시원 가서 또 아는 사람 만들어야 하는 그 과정이 귀찮다는 얘기야.



그런데 또 혼자는 좀 외로울 것 같고..그래서 그냥 지금이 좋다는 거야"





"누가 뭐래?"





"근데.. 있잖아.. 오해말고 들어.."



 

“뭘..?”





"나 오빠 한 번 안아봐도 돼..?”





"응!?"

 



“응이라고 했으니 그럼..”

 



“그 응이 아니잖..”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은서는 이미 내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미안, 이대로 딱 5분만..”





 

둘 데 없던 어정쩡한 내 오른손도 어쩔 수 없이 은서의 (최대한 브라 끈에는 닿지 않게끔 신경써서)



등 위에 살짝 올려두었다.

 

은서는 내 다리 사이에 자기의 왼쪽 다리를 집어넣은 것 외에는 



정말 두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말도 움직임도 없이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은서야, 5분 지났다.”



 

“와, 나 잠들 뻔 했어.”



 

“나 이제 진짜 가봐야겠다. 여기 고시원 9시 지나면 빨래 못 돌리거든. 나 빨래해야 돼.”



 

“아, 맞다. 나도 빨래. 그래 알았어. 혹시 내일 저녁에 뭐해?”



 

“뭐하긴 뭘 해. 수험생이 공부해야지.”



 

“공부는 무슨, 맨날 동생들이랑 술집이나 pc방에서 사는 것 같던데.”



 

“아니거든. 내일부턴 진짜 열심히 할거 거든. 근데 내일은 왜?”



 

“아니, 저녁이나 먹자구. 갑자기 같이 밥 먹던 사람이 없어져서 혼밥 하기까지 적응기간이 필요해. 



그때까지 나랑 밥 좀 같이 먹어줘.”



 

“나 식객에서 월식하잖아. 같이 먹을 거면 거기 식권 사. 나 간다.”



 

“망 봐줘?”



 

“아니. 너가 망보는 모습이 더 의심 살 거 같다. 나 진짜 간다.”



 

한참을 문에 귀를 대고 밖에서 아무런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계단까지 나올 수 있었다.



입구까지 한 5미터 되는 거리가 50미터는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와..떨려. 이것도 진짜 못할 짓이네..'

 



내 방에 올라와 쌓여있던 빨래를 하고 책상에 앉아서 오랜만에 계획표를 다시 만들었다. 



2주 전에 다 들었어야 할 형법 강의가 산더미처럼 남아있었다.





'합격자들이 기출 강의는 안 들어도 된다던데..그냥 듣지 말까..?

   

아니야. 쉽게 쉽게 가려고 하지말고 강사가 들으라고 하는 건 듣자.



그리고 내일부턴..정말 내일부턴 열심히 하자. 집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자. 제발.’



 

1시간 동안 자로 반듯하게 줄까지 그어가며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계획표를 만들고나서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책을 조금 보다 잘까도 싶었지만



내일부터는 정말 일찍 일어나서 공부할 거니까 역시나 지금 일찍 자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방 불을 끈 뒤 침대에 누워 오늘까지만 보고 지울 아프리카tv 앱과 작별 인사라도 할 겸,



휴대폰을 집어드는데 카톡 하나가 와있었다.



 

은서: 자?

 

지훈(내 이름): 어. 이제 자려구.

 

은서: 나 아까 오빠 안고 있을 때 너무 좋았어. 마음이 편해진달까.

 

지훈: 그랬다면 다행이네..

 

은서: 그리고 오빠 자제력에 놀랐다.

 

지훈: 무슨 자제력..?

 

은서: 아까 내 허벅지에 오빠 꺼 엄청 닿았었거든.ㅋㅋ

 

지훈: ....

 

은서: 그렇게 커졌는데도 가만히 안고만 있는데 기특할 정도.ㅋㅋ

 

지훈: 그거 커진 거 아닌데..

 

은서: 응. 꺼져.

 

지훈: 잘자라.

 

은서: 응. 오빠도.        22:00



 

대화를 마친 뒤 내일부터는 진짜 일찍 일어나서 공부를 해야한다는 일념 하에 



아프리카앱과 작별인사는 생략하고 바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런 기특한 수험생의 단잠을 깨우는 휴대폰 진동소리.











은서였다.

 

 











 

은서: 어떡해..나 잠이 안 와..     01:00

 

 

 

 

 

 

 

 

3편에서 계속......

 

 

 

 

 

출처 : MLBPARK (STARBUCKS)

반응형